어리다
2019년 12월 13일 금 오후 8:58
한 해가 또 저문다. 조만간 새로운 나이로 자기 소개를 하게 된다. 안녕하세요. 24살 D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나와 나이의 관계를 평한다. 그렇게 안 보여요. 한창이네. 성숙하시네요. 그 나이 같네.
넌 아직 어려.
도하씨는 어려요. 이 말 듣기 싫었다. 어리다는 말은 그래서 당신을 만족시킬 어떤 것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내가 뭔가를 덜 얻었기 때문에 그게 당신과 나와의 관계에 틈을 만든다는 말이다. 당신은 내게서 어떤 결핍을 예감하거나, 이미 느꼈다. 나는 그 결핍을 알 수 없다. 경험하지 못했으니까. 당신이 그 말을 내뱉고 내가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의 관계는 수직적으로 변한다. 틈과 위계가 생긴 관계가 내게 귀속된다.
당신은요, 어리고 어려워요.
이 말은 내게 비수처럼 꽂혔다. 당신은 내게서 오직 시간만이 메울 수 있다고 믿는 차이를 느낀다. 한편 내가 삶 속에서 얻은, 당신의 것과는 다른 경험을 견디기 버거워한다. 그거 내게는 이렇게 들렸다. 도하씨, 내게서 외로우세요. 간극만큼.
어느 밤이 그리웠다. 이렇게 대화가 끝나지 않던 밤. 어떤 당신이 그래도, 로 운을 띄우던 밤. 그래도 널 이해하려 할게. 우린 다르지만, 같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서로의 다른 경험이 약간은 무색할 수 있다고 말하는 당신은 아무 위계도 짓지 않았다. 그거 내게는 이렇게 들렸다. 내게서 외롭지 말아.
적당한 나이가 되면 어리다는 소릴 듣지 않을 것이다. 나보다 어린 누군가가 더 많이 생기고, 고되게 지나온 시간만큼 나이 어린 타인이 까마득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그러나 전혀 다른 삶만큼이나 모두가 전혀 다른 경험의 질감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회 구조적인 이유로 시간상 비슷한 경험을 가질 수는 있어도 그 내용은 반드시 상이하다. 그것은 타인과의 위계를 세울 명분을 가질만한 경험이 될 수 없다. 시간에 기대어 사상적 우위를 점거하는 것은 폭력적이다. 다르다, 가 아니라 어리다는 말은 사람을 부족함 있는 누군가로 낙인하고 그를 끝까지 외롭게 할뿐이다.
그래서 어른은 조언까지만 해야 한다. 타인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고 평가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다만 조언자로서 충성스럽게 당신을 위한 말을 해주는 게 먼저 경험한 자의 일이다. 여러 해가 지나고 나이가 들어도 나는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중 누구도 같은 삶을 배우지 않는다.